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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 내용/토독회

[서평] 책들의 행진 / 이효경 지음

by 포럼문화와도서관 2017. 4. 4.

(책거리 병풍을 뚫고 걸어 나온) 책들의 행진

 

 책들의 행진 / 이효경 지음 / 한국도서관협회(2014)

 


이 책은 미국 대학(컬럼비아대학과 워싱턴대학)에서 16년 이상 한국학사서를 하고 있는 이효경 선생이 사서로서 겪은 도서관 일과 자료, 그리고 이 속에서 성장하고 있는 자신에 관한 이야기다. 매튜 배틀스의 도서관, 그 소란스러운 역사가 연상되는 제목이다. 단지 현대 미국의 도서관이라는 제한된 공간이라는 것이 다르지만 신나고 흥미진진한 도서관 사서의 이야기라는 점에서는 다를 바 없다. 요즘 강의 시간에 말하곤 한다. 책이 좋아서 사서가 되겠다거나 서점을 운영하겠다, 는 생각은 안하는 게 좋겠다고. 실제 사서나 서점 주인은 책을 관리하고 서비스하는 일 자체가 중노동이라 개인적으로 편안하게 책 볼 시간이 없다. 그러려면 충실한 도서관 이용자나 독자로 남는 편이 나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필자는 처음부터 남다르게 책을 좋아하지도 않았고 사서를 목표로 하지 않았기 때문에 좀 더 객관적으로 직업적인 사서의 세계로 발을 들여놓지 않았나 생각된다.

 

필자는 한국에서는 시험 성적에 맞추어 대학에 갔고 미국에서는 좀 더 여유로운 삶을 갖기 위해 박사과정도 밟으려 했지만 미국의 엄격한 학사관리제도와 직업적 체계에 발목이 잡혀 바로 포기했다고 한다. 미국보다 박사과정이 엄격한 곳도 있겠지만 우리나라와 달리 미국은 현장 근무자가 박사과정을 밟는 것이 애초부터 불가능하고 무엇보다 직장에서도 종신재직권을 얻기 위해서는 6년여 간의 실적을 평가받는 엄격한 제도를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사서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주제전문사서가 되기 위해서는 그 학문적 배경이나 연구 능력도 중요해서 일에 대한 열정과 노력이 없이는 견디기 힘든 직업이다. 필자가 있는 워싱톤 대학은 주제전문사서가 70명으로 거의 학과 당 1명수준이라고 한다. 여기서 한국 대학도서관의 현실을 생각하면 그저 답답한 마음이다.

 

멀리 이국 땅에서 한국학 사서로 일하고 있는 분들은 북미, 유럽을 거쳐 30여명에 이른다. 이 분들은 어쩌면 국위선양의 당사자이기도 하다. 프랑스 국립도서관 사서로 근무하고 있던 역사학자 박병선 박사는 1975년 외규장각을 발견, 이 책들이 한국으로 반환될 수 있는 결정적 계기를 만들었다. 더불어서 캐나다 토론토 대학의 김하나 사서를 비롯하여 북미의 사서들은 20087월 미국 의회도서관에서 독도표기 문제가 제기되었을 때, 바로 주제명표목표를 통한 영토전쟁을 결정적 승리로 이끌었다. 이 들의 협력의 바탕에는 크게 동아시아도서관협회가 있고 여기에 한국학자료분과위원회가 있었다. 또한 한국학사서들은 한국국제교류재단기금으로 한국도서관컨소시엄을 구성하고 <Ask Korea Studies Librarian>을 통해 전 세계적으로 서비스를 하며 그 위상을 높이고 있다. 우리나라 국립중앙도서관도 그 지원 활동을 확대하고 있다고 하니 다행한 일이다.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책거리 병풍에 관한 에피소드다. 19C 중엽 조선시대 이응록이 그린 이 병풍이 어떻게 미국까지 가게 되었는지 의문이다. 거기에 이 대학 도서관장은 이 병풍의 가치를 어떻게 알아내서 샌프란시스코 아시아 박물관에다 내다 팔 생각을 했을까? 어쨌든 중요한 것은 이 병풍이 고가에 팔렸고 그 돈을 다른데 쓰지 않고 이 대학도서관의 한국학장서 소장을 위한 기금으로 사용한다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귀중본 소장과 다양한 이용서비스 요구에 대한 가치를 정책적으로 판단한 사례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외국에서 보면 한국학은 남한과 북한을 모두 포함한다. 그런데 한국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북한자료는 <특수자료취급지침>의 대상이 되고 잘못 사용하다가는 <국가보안법> 위반이 되기 때문에 자기 검열에 충실한 실정이다. 그런 점에서 필자가 방문한 일본의 조선대학교 도서관보다도 남한의 도서관이 사상과 이념의 경계로부터 자유스럽지 못하다는 지적은 아프게 다가온다. 필자가 한국학 사서로서 당연한 일이겠지만 그림책(만화)을 비롯한 다양한 북한 책을 수집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한국학 연구의 질적 발전을 위해서 고마운 일이다.

 

이 책 곳곳에는 필자의 사명감과 열정을 느낄 수 있는 사건들이 많이 있다. 서지학자로 상명대 교수였던 김종천 박사의 도움을 받아 개최한 해방 공간의 도서전시회(1945-1950), 아웃리치 서비스로 기획한 한국어 강연 시리즈 북소리는 결과만 보았을 때는 그리 큰 일이 아닌 것 같지만 그 과정을 통해 얼마나 열과 성을 다했는지 알 수 있었다. 학문적 전문성과 열정 못지않게 조국에 대한 깊은 사랑이 없이는 해 낼 수 없는 일이었다.

 

그 밖에 뉴욕 컬럼비아대학 한국학 사서로 일했던 고종 황제의 아들 의친왕의 딸인 이해경 선생 이야기, 한민족 디아스포라 역사자료 구축을 위한 자료센터 설립에 대한 제안, 한국을 사랑하며 한국인보다 더 한국학에 심취하고 있는 외국 학자들의 이야기는 재미와 반성을 동시에 갖게 한다. 특히 일생을 18C 조선시대 유학자 유형원 연구로 바친 제임스 팔레(James Palais) 교수, 한글 필사본으로 추정되는 고전 연작 소설 <벽허담 관제어록><하씨선행후대록>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러시아 사하족 출신의 울리아 코브야코바(Uliana Kobyakova) 같은 사람을 보면 경외감이 든다.

 

사서들은 책만 보면 멀미가 난다고도 하지만 사서는 누구보다 전문직으로 봉사를 해야 한다. 사서로서 봉사해야 할 일은 참으로 많지만 무엇보다 나는 글을 써서 자기의 지식과 생각을 많은 사람과 나눠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필자의 생각도 다르지 않았다. 우리는 생각하는 만큼 어휘를 구사할 수 있고, 아는 범위 내에서 사고한다. 어휘력과 사고력은 상호 연관성이 깊다. 몰랐던 단어를 알게 되는 것은 그 단어의 고유한 개념을 새롭게 인식하는 작업이 되어 사고의 영역을 넓혀준다. 아프리카 속담이라고 하던데 노인이 한 명 죽는 것은 도서관 하나가 없어지는 거라고 했던가. 크게 틀린 말이 아니다. 사서가 바로 그 오랜 경륜과 지혜로 만들어진 노인이 아니던가. 사서가 책과 사람을 가까이 하면서 얻는 그 지혜의 보물들을 나누는 것이 어쩌면 윤리 강령의 첫 번째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참으로 사서들에게 모범이 될 만한 귀한 책이다.

 

이효경 사서는 이를 개인적인 이유를 들어 설명했다. 글은 잊혀져가는 기억과의 싸움 속에서 재생해내는 값진 산물이며 사유의 놀이터로 어휘의 연습장으로 그리고 감동의 전이를 만끽하고 신나는 나만의 스토리텔링을 마련하는 장이라고. 맞는 말이다. 공감한다. 그러나 나는 여기에 앞서 말했듯이 공적인 이유를 하나 더 붙이고자 한다. 사서는 다양한 활동과 전문적인 연구와 지원을 통해 그 기록을 보존할 뿐 아니라 그 기록, 다름 아닌 역사를 써 나가며 널리 공유하는 사람으로서 글을 쓰는 것은 당연한 의무여야 한다. 그래서 사서는 그 빛나는 지혜를 많은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아름다운 업을 숙명처럼 지녀야 하는 사람이 아닐까?

 

명지대학교 문헌정보학과 교수 송승섭